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살길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철성 님은 분명히 객관적 상황은 괜찮은데 만족할 줄 모르는 스스로에게 고생을 좀 해보면서 깨우쳐 주기 위해 백일출가를 신청하였다고 합니다. 일수행을 하면서 나도 괴롭지 않고 남도 괴롭지 않은 방식으로 일하는 길을 배울 수 있었고,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내 기준을 고집하며 남에게 끊임없이 시비분별하는 모습을 돌이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백일출가를 통해 생각과 행동이 바뀌는 경험을 하면서 이전보다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해졌다는 수행담을 함께 나눠봅니다.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싼다

나는 화목한 가정이 있고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46세 중년 남자다. 가정생활은 만족스러웠다. 아내는 내 말을 잘 들어주었고, 아이들은 서로 사이좋게 지내었다. 직장생활도 원만하고 안정적으로 잘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은 것도 계속되면 만족스럽지 못한 얄궂은 마음이 생겨난다. 분명 객관적인 상황은 괜찮은데 나는 괜찮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이 좋으면서도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것보다 더 좋은 게 없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되었다.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싼다는 말처럼 복이 복인 줄 모르고 어리석은 생각으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래서 ‘고생 좀 하면 그런 생각 안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백일출가를 신청했다. 백일출가는 만 배로 시작해서 회향일까지 정말 고생문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고생하려고 왔는데 고생을 시켜주니 나는 저절로 여기에 온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여래원 백일출가 홍보(왼쪽이 이철성 님)
▲ 여래원 백일출가 홍보(왼쪽이 이철성 님)

우물 안 개구리

나는 사회생활에서 무리하지 않는 것을 신조로 삼았다. 무리하면 몸이 힘들고 감정적으로 대응하여 사람들과의 관계가 안 좋아진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깜박거리면 사람들은 달리기 시작하지만 나는 반대로 더 여유를 부리며 멈춰서는 식이었다. 조금만 부담스러워도 하지 않고, 조금만 힘들어도 포기하는 식으로 잘살아왔다. 그러면서 내가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졌고, 새로운 일에는 상당한 거부감을 느꼈다. 그런 나에게 백일출가 일수행은 신세계였다. ‘이걸 어떻게 해!'하는 징징거림을 한 방에 날려주는 경험들이 계속되었다.

청정당 사면의 나무와 넝쿨을 정리하는 일수행이 있었다. 사면의 경사는 너무 심했고 전기톱으로 잘라놓은 나무는 너무 굵고 무거웠다. 또 사면에 엉켜있는 가시덤불은 도저히 걷어내기 힘들어보였다. 일 연구를 통해 어떻게 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협의하였다. 좌우로 안전하게 간격을 두고 경사가 급한 곳과 나무가 많은 곳은 힘이 센 사람들이 맡고, 잔가지와 덩굴들은 아래로 뭉쳐서 굴리는 식으로 작업을 해나갔다.

사면정리로 끌어모은 나무들을 트럭에 싣고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 토론했고 여러 가지 제안이 나왔다. 서로 자신의 방법을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짜릿했다. 보통은 잘 아는 사람이나 목소리 큰 사람의 의견을 따라가기 마련인데, 이때는 여러 사람이 의견을 내었고 시행착오를 거쳐 점점 효율적인 방법으로 작업방식을 결정하였다. 사면정리라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인력, 도구,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서로 협력하면서 일을 완수해보는 것은 멋진 경험이었다. 매번 혼자 일을 하면서 내 생각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던 나에게 ‘이런 식으로도 일이 해결될 수 있구나! 이런 식이면 못 해낼 일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다양한 일수행에서 처음에는 내가 편하고, 내가 잘하고, 내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일도 잘 안되고 도반들과 불편해지는 일이 많아졌다. 법사님과의 대화를 통해, 나를 내세우지 말고 일이 잘되려면 어떻게 하는게 좋을지 생각해보도록 안내받았다. 개인 중심에서 일 중심으로 관점을 바꾸니 일수행을 해나갈수록 마음이 편해지는 경험을 하였다.

공양간에서도 내가 맡은 소임을 잘 완수하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 모두의 소임이 잘되도록 진행이 부족한 부분을 살펴 함께 하려는 노력을 해보았다. 그래서 잘될 때도 있고 잘 안될 때도 있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내가 노력한다고 일이 다 잘되는 것은 아니구나’라고 알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잘 안되는데, 뭐 하러 열심히 하나?’라고 생각하고 대충 했을 텐데 백일출가에서는 달랐다. 잘 안되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바른 길은 열심히 하는 것이라는 것을 해보니까 알 수 있었다. 열심히 했는데도 잘되지 않는 일이 반복됐지만 남을 탓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도 괴롭지 않고 남도 괴롭지 않은 방식으로 일하는 길을 배울 수 있었다.

대강당 탈의실 정리 작업(두 번째 줄 왼쪽 첫 번째가 이철성 님)
▲ 대강당 탈의실 정리 작업(두 번째 줄 왼쪽 첫 번째가 이철성 님)

왜 분별하는데요?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볼 수 있었다. 나는 내 기준을 알게 모르게 계속 상대방에게 적용하고 있었다. 내 기준에 맞을 때는 기분 좋아하고, 내 기준과 다를 때면 불편해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좀 심하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말하는 것에 걸렸다. 도반들과 나누기 시간에는 나누기 분량이 마음에 걸렸다. 마음 나누기를 할 때 말을 너무 많이 하면 마음이 불편하고 답답했다. ‘좀 적당히 하지, 뭔 말이 그렇게 많나?’ 이런 생각이 올라왔다. 또 말의 내용에 걸렸다. 별것 아닌 일에 무슨 의미 부여를 그렇게 하는지 듣기가 불편했다.

거기서 끝나면 그럴 수도 있지 하겠지만 나는 상대방의 절하는 속도, 밥 먹는 속도, 염불하는 소리, 표정, 일하는 방식 등 사사건건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시비분별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쌓여 나를 괴롭혔다. 몇몇 도반에게는 그런 마음이 찌꺼기처럼 남아 나와 직접적인 갈등은 없었지만 속으로 불편함을 일으켜 편하게 대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백일출가 기간 내내 그렇게 괴로움을 만들었다.

백일출가 후반기에 들어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 도반과 함께 300배 개인 정진하러 대웅전으로 올라가는데 마침 대웅전에서 49재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대웅전에 계시던 법사님이 급하게 내려오셨다. 그 모습을 본 도반이 법사님을 만나러 뛰어 올라갔다. 나는 그냥 걷던 대로 걸으면서 ‘날도 더운데 그냥 걸어가서 법사님 만나도 될 것을 뭐 하러 뛰어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법사님을 만나고 내려온 도반에게 조금 전 내 생각을 말했다. ‘법사님 만나러 가는데 왜 뛰어가요?’ 마치 정말 그 이유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근데 도반의 대답이 굉장했다. 도반은 ‘왜 분별하는데요?’ 남이야 뛰어가든 걸어서 가든 왜 참견이냐는 말로 들렸고 나는 말문이 콱 막혔다.

그냥 이유를 물어본 건데 이런 반응을 들으니 억울한 마음에 “그럼 우리가 말하는 것 중에 분별 아닌 게 어디 있어요?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겠네요”라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백일출가 기간 중 나에게서 가장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편하게 생각하는 도반이었고, 백일출가 막바지라 마음도 느슨해지니 나의 본 모습이 드러난 것이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고 바로 300배 개인 정진을 시작했다. 그때 내 기도문은 ‘내 생각만 하느라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수용하지 못해 아이들의 마음을 불편하고 힘들게 했음을 참회합니다’였다. 그런데 기도문에 집중하지 못하고 아까 있었던 일에 사로잡혀 있었다. ‘왜 뛰어가는지 물어볼 수도 있지 않나? 시비분별하지 말라는 부처님 법은 자신에게만 적용해야지, 그걸 나에게 들이대면 어떡하나?’ 등 내 생각이 옳다는 것을 계속 고집하고 있었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내 생각만 하느라 도반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편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여기서 돌이키지 못하면 나중에 아이들을 만날 때도 돌이키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실은 내가 먼저 도반을 시비하는 말을 했으니 그런 말을 들어도 쌌다. 그렇게 내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정진을 마치고 마음 나누기에서 잘못을 참회하고 도반에게 사과했다. 도반은 나의 사과에 자신도 실수했다며 나를 감싸주었다.

요사채 앞마당에서 도반들과 함께(오른쪽 첫 번째가 이철성 님)
▲ 요사채 앞마당에서 도반들과 함께(오른쪽 첫 번째가 이철성 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행복해지기

백일출가를 하면서 우리는 서로 이어져 있고, 그래서 나와 상대를 따로 떼어서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내가 잘나서 잘 먹고 잘산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의 도움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생활하면서 내가 살아가는 데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뿐만 아니라 만물의 도움이 아닌 것이 없었다. 말은 도와준다고 하지만 서로 돕는 것은 당연했고, 나도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점점 나의 일, 너의 일이라는 구분이 없어졌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행동도 바뀌었다.

백일출가를 마친 나는 예전과 다름없이 생활하고 있다. 여전히 가정과 직장에서 속으로 시비분별 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 하지만 시비분별하고 있는 줄 알고 있고, 시비분별 하는 것이 나에게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알아차리지 못하고 알아차리더라도 내려놓지 못하는 때가 대부분이지만 재미가 있다. 내가 나의 상태를 아는 것에 감사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길을 아는 것에 감사하다. 또 일할 때 예전에는 나를 중심에 놓고, ‘잘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고 걱정하며 불안해하였지만 이젠 내가 아니라 일을 중심에 놓고 일이 잘되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연구한다.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부처님께 감사하고 그 가르침을 삶 속에서 어떻게 적용하는지 알려주신 법륜스님, 묘수법사님, 공동체 식구들, 행자원 식구들, 45기 행자님들에게 감사하다.

모두의 인연과 공덕으로 제가 잘 살고 있습니다. 저도 은혜에 보답하며 살겠습니다.

평화재단 포럼(맨 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이철성 님)
▲ 평화재단 포럼(맨 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이철성 님)


이 글은 <월간정토> 2023년 10월호에 수록된 이철성 님의 백일출가 수행담입니다.

글_이철성(백일출가 45기)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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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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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회원

비슷한 상황이라 더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일의 구분이 없어져 가는것도 비슷 합니다.
저도 잘하고 있는가 봅니다.^^

2024-05-03 21:28:40

강물

진솔하고 구체적인 수행담을 통해 배움이 있고 감동이 있습니다. 소중한 수행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05-01 13:01:30

평화

자신만만 했던 내 모습을 돌아봅니다. 감사한 경험담 고맙습니다.

2024-05-01 10: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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